[수필] 유 – 죽음

[수필] 유 – 죽음

유(void){} – 죽음

당신은 사람이 죽는 시점이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심장이 멎었을 때? 혹은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
필자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의도는, 단지 죽음의 시점만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시점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현재 손해보고 있는 부분들을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죽음에 닥쳐 삶의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환자에게도 기쁜 소식일 수도 있다.
현대 의학에서 이처럼 죽음의 시점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 중요한 이유를 대자면 뇌사자의 장기기증에 대한 것이다.
불과 100여년 전부터 죽음의 시점이 심장사와 뇌사로 좁혀졌는데―육체적인 죽음으로 국한하겠다―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보통 뇌사를 하면 호흡을 담당하는 뇌간도 죽는 것이라고 옛날 사람들은 생각했고, 뇌사는 곧 심장사로 이어지는 것이 고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뇌사에는 세 가지 뇌사가 있다. 전뇌사(whole-brain death), 대뇌사(cerebrium death), 그리고 간뇌사(brain stem death)가 바로 그것이다.

― 참고 : 철학자 코기토 님의 도움(아래)

전뇌사는 뇌사라고 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준이다. 이는 두뇌의 모든 부분, 즉 대뇌, 소뇌, 뇌간, 중뇌 전체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그 기능들이 비가역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전뇌사 상태에서는 어떠한 의식이나 움직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자발적으로 유지하지도 못한다.
 대뇌사는 고등뇌사(higher-brain death)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뇌사의 기준 중 가장 급진적이다. 대뇌 피질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그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는 일반적으로 식물인간 상태(Persistent Veigitative State, PVS)라고 부른다. 흔히 식물인간 상태를 뇌사 상태와 혼동한다. 식물인간 상태를 뇌사 상태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대뇌사 혹은 고등뇌사를 인정해야만 한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간혹 눈을 뜨기도 하고 눈을 깜박이기도 한다. 그리고 척추반사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깨어있기는 하다.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어떠한 종류의 정신적 활동도 하지 않으며 어떠한 의식도 없다.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생물학적으로는 죽은 상태가 아니다. 대뇌의 기능은 정지되었지만, 뇌간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영양과 수액이 공급되고 적절한 간호를 받는다면 수개월 혹은 수십년까지 인공적인 생명유지 장치의 도움 없이도 자발적으로 호흡하고, 혈압과 맥박을 유지하며 체온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대뇌사를 한 인간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는 대뇌가 기능을 상실하면 더 이상 어떤 인간의 정신적 내력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 즉 그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뇌사는 전뇌사나 심폐사에 비해 진단이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즉, 대뇌는 살아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때때로 기능이 정지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알콜과 근육이완제와 같은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약물은 대뇌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 또 저온에세 오랫동안 머무름으로써 저체온증에 빠진 환자도 대뇌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대뇌가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뇌가 모든 정신적 능력을 관장하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확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현재의 신경과학의 수준에서, 대뇌의 기능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뇌간사(brain stem death)는 영국 왕립의과대학에서 제시하는 뇌사의 기준이다. 이는 뇌간의 비가역적 기능정지로 인해 뇌기능 전체를 통합하는 기능과 생명유지 기능이 상실된 상태이다. 뇌간은 사실상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핵심적 기관이다. 따라서 더 이상 생명유지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존재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또한 뇌간은 신체의 모든 기능을 통합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생명을 어떤 유기체가 통합된 전체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미 그러한 통합기능을 상실한 유기체가 생명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또한 이미 자발적으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의 생명을 인공적 장치를 통해 연장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뇌간이 의식을 유지시키고 기억을 저장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뇌간 기능의 정지를 인격의 소멸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뇌간이 하는 기능이 정확히 무엇이며, 다른 두뇌 구조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극단적인 경우로, 뇌간의 생명유지 기능은 정지되었지만 의식유지와 기억중추는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을 모순 없이 상상할 수 있다. 이 경우 대뇌 기능이 정상이라면, 이 환자는, 비록 생명유지능력은 상실했지만, 완벽한 의식과 인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만약 이 환자의 운동중추가 기능을 상실했다면, 자신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전뇌사의 경우라든지 간뇌사의 경우 장기를 담당하는 간뇌가 죽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뇌사가 곧 죽음으로 인식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순간은 바로 생명유지장치(life-support system)의 개발이다.
이 장치가 개발되면서 많은 모든 뇌사상태의 사람들이 호흡과 심장박동을 유지하게 되었고 의학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과연 죽음의 기준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1968년 하버드 의과 대학에서는 뇌사판정기준을 정하여 그것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를 죽은 자로 인정하도록 했다. 그에 이어 많은 나라들이 그 기준들을 세워 보았지만 인간인 우리로서는 그것이 정말 합당한 기준인지 의심이 가기 마련이고 한편으로는 쓰라린 마음을 감출 수가 없음이 사실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필자는 위에 까지 쓴 글에서 죽음의 시점을 판단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당연히 다르며, 종교에 따라서도 다르고, 직업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는 의견이므로 이 다음부터의 글들도 생각하면서 읽어주길 바란다.


void death(void){}
위에서는 죽음을 의학적으로만 분석해 보았다. 그 중에서도 심폐사와 뇌사만을 가지고 이야기 했는데, 죽음을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생각을 넓히고 철학을 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인간을 하나의 유기체로보아 유기체 전체의 통합된 기능이 상실되는 시점이 사망시점이라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생물학적 접근이다. 이 관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전뇌사와 간뇌사를 제외한 대뇌사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도덕적으로 죽음을 정의하자면, 인간을 사람으로 보아 한 개인으로서의 삶의 질이 상실되는 시점이 사망시점이라고 본다. 이 관점은 너무나 주관적이고 오랫동안 토론 할 수 있는 좋은 주제이기 때문에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세 번째로 존재론적 접근이 있다. 이는 인간을 사람으로 보아 개인의 동일성identity을 유지하지 못하는 시점이 사망시점이라고 본다. 이는 모든 뇌사환자가 죽은 것이라고 보고, 또한 자신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말기 치매 환자도 죽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에서 생물학적 접근이 의학적 접근과 매우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두 관점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많은 여러 나라에서 죽음과 생명의 기준을 엉성하지만 의학적으로 규정지어 놓았음에 틀림없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단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우리들은 유기체이고, 인간이 어느 순간부터 유기체이고 아닌지를 규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의학적으로는 인간이 장기라는 부품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계임에 지나지 않지만, 유기체가 모여 유기체를 만들고 그 유기체 하나하나가 서로 얽혀져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 생물학자들이 보는 견해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생물학적 접근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요한 문제점 중에 첫 번째는 바로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거나 끝나는 시점을 순전히 생물학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인간의 생사(生死) 시점을 파악하는 것이 도덕적 지위에 차별을 두기 위한 것이라면 위의 시점은 생물학적이 아닌 도덕적으로 규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문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할 때에 살아있는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냐라는 논란이 나와 우리들에게 많은 고민을 주었던 문제이다. 바로 인간이 되고 있는 becoming단계,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being단계, 과거 인간이었던 has been단계를 명확히 생물학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 때 그 문제점은 없어질 것이지만, 두 번째 문제는 생물학적 접근이 어쩌면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암시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떠나서 필자는 우리가 지금 꽃을 보고 향기를 맡고 어루만져 주며, 또한 친구를 만나고 음악을 듣고 공부를 하고,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것이며 앞으로의 죽음까지 이렇게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면 앞에서의 이야기는 전혀 쓸모없고 도움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쯤에서 글을 접고 밖으로 뛰쳐나가볼 생각이다.


Je pense, donc je suis     C?git?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R.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 끝에 도달한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제1원리.
-Ren Descartes(R.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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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디어 오랜만에 글을 쓰는군요 -_-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

아 학교 지각이다….

그럼 이만…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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